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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정악 감상 입문〉 – 영산회상에서 미학을 느끼다

by focus-y 2025. 7. 24.

정악(正樂)은 흔히 ‘바른 음악’이라 해석되지만, 이는 단순한 가치 판단이 아닌 조선 시대 유교적 이상과 지배 계층의 미적 기준이 반영된 명칭이다. 궁중 제례와 선비의 수양을 위한 음악으로 연주되며, 느린 호흡과 절제된 표현으로 한국 음악의 정적인 아름다움을 대표한다.

그중에서도 영산회상(靈山會相)은 기악 정악의 정수로 꼽힌다. 이 곡은 본래 불교의 찬불가 ‘영산회상불보살’에서 유래하여, 시간이 흐르며 가사가 탈락하고 기악곡으로 변화하였다. 이후 다양한 연주 편성과 조성을 통해 분화되며 독자적인 세 가지 갈래로 전승되고 있다.

영산회상 사진


 

1. 현악영산회상 (아명: 중광지곡)

  • 편성: 거문고, 가야금, 해금, 대금, 세피리, 장구, 양금, 단  현악기 중심의 편성
  • 구성: 총 9곡
    상령산 – 중령산 – 세령산 – 가락덜이 – 상현도드리 – 하현도드리 – 염불도드리 – 타령 – 군악
  • 특징:  주로 거문고, 가야금, 해금 등 현악기를 중심으로 연주되며, 섬세한 장단 운용과 미세한 음색 조절로 정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2. 관악영산회상 (아명: 표정만방지곡)

  • 편성: 피리, 대금, 해금, 아쟁, 장구, 좌고 등 관악기 중심의 편성
  • 구성: 총 8곡 (하현도드리 생략)
    상령산 – 중령산 – 세령산 – 가락덜이 – 상현도드리 – 염불도드리 – 타령 – 군악
  • 특징: 피리를 중심으로 한 풍부한 음량과 장중한 합주가 특징이며, 절제된 표현보다는 기백 있고 활달한 음향이 두드러진다.

 

3. 평조회상 (아명: 유초신지곡)

  • 편성: 피리, 대금, 해금, 가야금, 거문고, 아쟁, 장구 등 관현악 편성
  • 구성: 총 8곡
    상령산 – 중령산 – 세령산 – 가락덜이 – 상현도드리 – 염불도드리 – 타령 – 군악
  • 특징: 현악영산회상의 선율을 조(調)를 달리한 음악으로, 낮은 조성으로 느껴지는 음색의 온화함은 정악의 우아함과 풍류적인 정서를 보다 친근하게 느끼게 한다.

 

🎧 감상 포인트

영산회상의 연주는 상령산(上靈山)으로 시작한다.
이 곡은 느린 20박 장단과 긴 호흡의 선율로 구성되어, 장엄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후 중령산–세령산–가락덜이–상현도드리(하현도드리)–염불도드리–타령–군악으로 이어지며, 점차 속도가 빨라지고 리듬이 활달해진다.

특히 타령군악에 이르면 음악은 화려하고 경쾌한 정점에 이르며, 정악이 결코 단조로운 음악만은 아님을 느끼게 된다.

감상의 핵심은 단순한 반복 속에서도 느껴지는 음색의 미세한 변화와 장단의 흐름, 그리고 악기 간의 상호작용이다.


 

🎵 느림 속에 담긴 고요한 깊이

정악은 빠른 전개나 격정적인 표현보다는, 절제와 반복, 미묘한 변화 속에 감정과 철학을 담는다.
영산회상은 바로 그 대표적 예로, 불교적 성찰, 유교적 품격, 풍류적 정서를 모두 품고 있는 음악이다.

현대의 빠른 일상 속에서, 정악은 느림의 미학과 고요한 내면을 마주할 수 있게 해준다.
영산회상의 한 장단, 한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비워낸 자리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 영산회상 세 갈래 비교 

구분 아명 곡 구성 악기 특징
현악영산회상 중광지곡(重光之曲) 9곡 가야금, 거문고, 해금 등 현악기 중심 정적, 섬세, 하현도드리 포함
관악영산회상 표정만방지곡(表正萬方之曲) 8곡 피리, 대금, 해금, 아쟁, 장구, 좌고 등 활달, 장중, 하현도드리 생략
평조회상 유초신지곡(遺嘯新之曲) 8곡 현악 중심, 조성 변화(임종 중심) 밝고 부드러운 음향, 실내악적 특성 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