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재는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산 자에게는 부처의 가르침을 일깨우는 대표적인 불교 천도의례이다. 『법화경』에서 석가모니가 인도 영취산에서 중생을 향해 설법한 장면, 즉 영산회상(靈山會上)을 상징적으로 재현한 의식이라는 데 본래적 의의가 있다.
1973년 국가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었고, 2009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며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오늘날 영산재는 단순한 종교 행위를 넘어, 음악(범패), 무용(작법무), 회화(괘불), 공예(불구) 등 다양한 예술 요소가 집약된 불교 종합예술의 정수로 간주된다.
1. 영산재의 역사와 전승 —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영산재는 조선 전기 문헌에서도 언급되며, 조선 후기에 이르러 범패, 작법무, 49재의 전통이 통합되며 오늘날과 같은 의례 구조를 갖추었다. 대표 문헌으로는 『오종범음집』, 『작법귀감』, 『범패운용』 등이 있으며, 의례 절차와 음악, 무용, 공간 장엄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현대에는 대한불교태고종 봉원사를 중심으로 전승되며, 전통적으로 3일에 걸쳐 봉행되던 영산재는 현대 사회에 맞게 1일형 구조로 간소화되어 다양한 행사와 법회에서 널리 시행되고 있다. 특히 현충일의 호국영령 추모 영산재는 전통 불교 의례가 국가 추모 의례로 확장된 대표적 사례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N68h1VTHd2w
2. 영산재 의례 절차 — 시련·괘불이운·작법무·시식·봉송
- 영산재는 유기적인 예술 요소와 의례 구조가 맞물려 진행된다. 일반적인 1일형 의식은 다음과 같은 절차로 구성된다.
- 시련(侍輦): 부처, 보살, 신중, 영가를 법회장으로 모셔오는 입장 의식으로, 공간을 정화하는 의미를 지닌다.
- 괘불이운(掛佛移運): 대형 불화인 영산회상도 괘불을 야외 법당에 모시고 거는 절차로, 법회의 개시를 알린다.
- 영산작법: 의식의 핵심. 범패(홋소리, 짓소리, 화청), 작법무(나비춤, 바라춤 등), 육법공양, 발원문 봉독 등으로 구성된다.
- 시식(施食) 및 식당작법: 굶주린 중생과 영가에게 공양을 베풀고, 회향하는 자비 실천의 예식이다.
- 봉송(奉送): 불보살 및 영가를 환송하며, 법회를 회향(마무리)하는 절차이다.
3. 범패(梵唄) — 불교음악의 핵심 성악 양식
범패는 불경이나 진언을 성음(聲音)으로 엮어 부르는 불교 성악 양식이며, 영산재의 핵심적인 음악 요소이다. 구성은 다음과 같다:
- 안채비소리: 의식을 주관하는 본찰(本刹)의 승려들이 부르는 소리로, 불경과 발원문을 낭송하는 형식이다. 주로 한문으로 된 산문체 문장을 낭독하듯 읊조리는 방식이며, 이는 ‘염불’이라 불리기도 한다.
- 겉채비소리: 본래 타 사찰에서 초청받아 온 범패 전문 승려들이 부르는 음악으로, 범패의 예술성과 음악적 깊이를 드러내는 부분이다. 이들은 ‘성’이라는 선율 단위를 축적해 한 곡을 이루며, 장부(長部)라는 리더의 지휘 아래 협동으로 음악을 구성한다.
- 화청(和請): 한글 또는 혼용 가사로 부르는 찬불가로, 대중의 이해를 돕는다. 민요풍 선율, 엇모리 장단 등 민속적 요소가 특징이며, ‘회심곡’이 대표적이다.
※ 참고: 범패는 일반적인 음악과 달리 고정된 장단 없이, 의식의 흐름과 장부의 지휘에 따라 자유롭게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범패가 형식보다 의례적 맥락을 중시하는 음악임을 보여준다.
https://www.youtube.com/watch?v=ecLbsAO-Q9I
4. 작법무(作法舞) — 몸짓으로 드리는 불교 공양
- 작법무는 단순한 무용이 아닌, 불보살에게 몸으로 드리는 공양(身供養)이다. 소리(범패)와 장단에 맞춰 수행자들이 정화된 몸짓으로 공덕을 표현하며, 공간을 성스럽게 변화시킨다.
- 나비춤: 가볍고 유려한 동작. 공간 청정을 상징.
- 바라춤: 타악기 바라를 활용. 장단과 공양의 의미를 드러냄.
- 법고춤: 북을 두드리며 번뇌를 떨치고 공덕을 기원.
https://www.youtube.com/watch?v=IPG7EPuBxY4&list=RDIPG7EPuBxY4&start_radio=1
https://www.youtube.com/watch?v=-LdTNkXE4dY
5. 현대적 의미와 가치 — 무형유산과 공연 예술 사이
오늘날 영산재는 전통 의례로서의 위상과 함께, 공연 예술 형태로도 활발히 재현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의례적 맥락이 희석된다는 우려도 있지만, 예술적 가치와 대중 인식을 높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특히 범패·작법무·시식 절차를 무대 형식으로 재현한 공연은 대중에게 한국 불교의 예술성과 철학을 접하게 하는 창구로 작용한다.
무엇보다도, 영산재는 여전히 살아 있는 수행의 장이라는 점에서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 대중은 합장, 염송, 공양 참여를 통해 법회의 일부가 되고, 이로써 불교 교리의 몸과 마음을 통한 실천이 가능해진다.
6. 살아 있는 불교 종합예술, 영산재의 오늘
영산재는 단순한 천도의례가 아닌, 불교의 교리와 예술이 집약된 종합적 수행 양식이다. 소리(범패), 몸짓(작법무), 그림(괘불), 공간 장엄(의장 및 불구)까지 모두가 어우러진 이 의례는, 자비·연기·무상의 가르침을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게 하는 살아 있는 무형유산이다.
오늘날에도 그 긴 숨결과 섬세한 손끝, 장단의 울림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영산회상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이다.
다음글에서는 영산재에 사용되는 음악인 범패에 대해 자세하게 살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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