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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이야기 7 영산재(靈山齋) ②편 - 영산재의 범패

by focus-y 2025. 9. 5.

영산재의 범패 – 한국 불교 성악의 정수

1. 범패의 개념과 위치

범패(梵唄)는 불교 의례에서 경전이나 진언을 음악적으로 읊는 성악 양식으로, 가곡과 판소리와 함께 한국 전통 3대 성악 장르 중 하나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리듬과 화성이 없는 단성 선율로 구성되며, 불교 의식인 '재(齋)'에서 승려들이 의식의 장엄성과 공덕 회향을 위해 부르는 음악이다.

고정된 장단 구조없다는 것이 특징인데, 의식의 흐름과 장부의 지휘에 따라 선율이 유기적으로 변화한다. 이는 형식적인 음악의 틀을 벗어난, 의례에 밀착된 즉흥적 성격을 보여준다.

특히 범패는 영산재와 같은 대규모 불교 의례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며, 소리(성악), 몸짓(작법무), 그림(괘불), 공간 장엄이 어우러진 종합예술로 기능한다.


2. 범패의 구조: 안채비, 겉채비, 그리고 대중 성악

범패는 기능과 형식에 따라 안채비소리겉채비소리로 구분된다. 여기에 별도로 화청회심곡이라는 대중 친화적 불교 성악이 전승된다.

  • 안채비소리(염불)
    절 안의 승려들이 내부 재의 시작에서 한문 산문 형식의 축원문을 평이한 선율로 낭송하는 형식으로, 장식 없이 엄숙하게 진행된다. ‘염불’이라고도 불린다.
  • 겉채비소리
    외부에서 초청된 범패 승려(장부)가 지휘하며 부르는 형식으로, 의식의 장엄성과 음악성이 강조된다. 겉채비소리는 다시 홋소리짓소리로 나뉜다.
  • 화청·회심곡
    불교 교리를 널리 알리기 위해 창작된 찬가 형식의 성악으로, 범패 외에 별도로 분류된다.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한글 가사, 민요풍 선율, 불규칙한 민속 장단 등이 특징이다.

3. 홋소리 – 정형시를 바탕으로 한 독창 또는 소규모 합창

홋소리는 한문 정형시(예: 12자 안짝, 34자 밧짝)를 비교적 빠르게 노래하는 범패의 기본 양식이다. 일반적으로 독창이나 소규모 합창으로 불리며, 4구로 구성된 악구를 반복하는 구조를 가진다.

발성은 분명하고 가볍고, 선율은 직선적이다. 선법적으로는 메나리토리 계열과 유사한 음역을 사용하지만, 일반적인 토리 음계와는 구별되는 의식음악 특유의 반복성과 형식미를 지닌다.

대표적인 예로 ‘할향게’, ‘합장게’ 등이 있다.


4. 짓소리 – 합창과 장엄성, 즉흥성이 융합된 고급 성악

짓소리는 한문 산문 또는 범어 사설을 합창 형식으로 부르는 음악으로, 장부가 지휘한다. 선율 단위인 ‘성(聲)’을 여러 개 쌓아 하나의 곡을 구성하며, 장식적인 반복과 느리고 꿋꿋한 발성이 특징이다.

특히 중간에 삽입되는 ‘허덜품’은 독창적 선율로 구성되어 전주나 간주의 기능을 하며, 범패 특유의 예술성과 형식미를 잘 보여준다.

문헌인 『동음집』에는 짓소리의 가사가 수록되어 있으나, 선율은 구전심수(口傳心授) 방식으로만 전승된다.


5. 화청과 회심곡 – 민중 친화형 불교 성악

화청(和唱)은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글 가사 또는 한자·한글 혼용 가사로 구성되며, 민요풍의 선율과 민속 장단(엇모리, 휘모리 등)이 특징이다.

회심곡은 『부모은중경』과 같은 경전 내용을 노랫말로 하여 부르며, 화청의 한 갈래로 볼 수 있다. 화청은 의식의 마무리(회향) 단계에서 주로 불리며, 반주로는 태징이 사용된다.


6. 작법 – 몸으로 올리는 공양, 불교 의식무

작법(作法)은 범패에 맞추어 올리는 불교 의식무용이다. 단순한 무용이 아니라, 몸을 통해 불보살에게 공양을 올리는 장엄한 행위이다.

대표적으로는 나비춤, 바라춤, 법고춤 등이 있으며, 『작법귀감』 등에 그 형식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장단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범패의 흐름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한다.


7. 역사와 전승

  • 신라시대
    원효의 『판비량론』, 월명사의 ‘도솔가’, 진감선사의 범패 전파(830년), 일본의 자각대사에 의한 당풍(唐風)·향풍(鄕風)·고풍(古風)의 구분 등이 기록되어 있다.
  • 고려시대
    연등회, 팔관회 등의 국가 의례에서 범패가 성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조선시대
    유교 중심 통치 이념으로 인해 불교와 범패는 위축되었으나, 서산대사, 보우, 의운 등 고승들이 전통을 계승하였다. 이 시기의 주요 문헌으로는 『범음종보』, 『작법귀감』, 『범음족파』 등이 있다.
  • 근현대
    1973년 범패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었으며, 2009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_ZZ1ZCXZBs

출처 : 국악방송TV(Gugak Broadcasting System: TV)

 


8. 범패의 의의 – 불교 의례와 전통음악을 잇는 다리

범패는 단지 승려의 노래에 그치지 않고, 소리(범패), 몸짓(작법), 공간 장엄(괘불과 법당 구조)이 어우러진 불교 종합 예술이다. 특히 영산재에서의 범패는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산 자에게 부처의 가르침을 전하는 공동체 의례로 기능한다.

이처럼 범패는 오늘날에도 살아 있는 유산으로서, 불교의례와 한국 전통음악의 경계를 잇는 다리이자,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 가능성을 품은 예술로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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